유래 및 연혁

  1. 우리동소개
  2. 유래 및 연혁

연혁

1913년 12월 29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의해 중랑지역은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현재의 상봉·중화·묵·망우·신내동)과 고양군 뚝도면(현재의 면목·중곡동)의 일부였습니다. 1949년 8월 15일에 서울특별시 구역 확장으로 고양군 뚝도면 면목리가 서울시로 편입되었고, 1963년 1월 1일 다시 양주군 구리면의 상봉·중화·묵·망우·신내리가 편입되어 현재의 상봉·중화·묵·망우·신내동이 되었습니다. 1968년 1월 1일에 동대문구에 편입되어 행정동 간 조정으로 면목동을 면목1·2동으로 분동하였으며, 1973년 7월에는 관악·도봉의 2개 구가 증설됨과 동시에 구간 조정으로 면목동의 일부가 성동구로 편입되면서 면목1동을 나누어 면목3·4동을 증설했으며, 1977년 9월 1일에는 면목1동 일부를 면목6동으로 분동하였습니다.

그 후 1988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367호('87.12.31 공포)로 인구 과대구를 분구해 중랑,노원,서초,양천,송파의 5개 구가 증설되었는데, 중랑구는 동대문구로부터 분리·신설되었으며, 17개동을 분할하고 동 명칭은 면목1·2·3·4·5·6·7동, 상봉1·2동,중화1·2동, 묵1·2동, 망우1·2·3동, 신내동으로 하였습니다. 동 통폐합 시행으로 2008년1월1일 면목1.6동을 통합해 현재 면목본동으로 하였습니다.

동 유래

설화1(중랑 이야기)

조선시대에는 중랑천 근방에 국립여관인 송계원이 있었기 때문에 중랑천을 송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송계교를 석교로 개축할 때 인근 마을의 장정은 모두 부역으로 동원되었는데 열여섯 살 되는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홀아비 장님 중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를 안 딸은 아버지 대신 부역을 하겠노라고 관아를 찾아가 여러 날을 지내며 대신 부역시켜줄 것을 간청하자 부역허가가 떨어졌는데 반드시 남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관아에서 시키는 대로 남장을 하고 참여했으나 문제는 생리현상이었습니다. 전전긍긍하던 그녀는 대나무를 잘라서 옷속에 넣어 관을 통해 서서 배뇨를 할 수 있게 하고 가능한 한 수분 섭취를 줄여서 배뇨 횟수를 줄이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눈물겨운 사연을 전해들은 관아에서는 마침내 중이의 부역을 해제함 으로써 부역을 대신하던 그녀의 딸도 눈먼 아버지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남자인 줄로만 알고 지내던 동료들이 그를 중낭자(仲郎子)라고 불렀으나 그가 사실은 남장 여인이라는 것을 알고난 다음부터는 그녀를 중랑(仲狼)이라 불렀고 다시 중랑(中浪)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설화2(행주형 지세)

면목동의 행주형(行舟形) 지세는 면목배수펌프장 일대를 말합니다. 배가 움직이는 것을 행주라 하는데 풍수에서 행주의 위치는 보통 좋은 집터를 설명할 때 사용됩니다. 이곳이 행주형이 되는 것은 동이로를 중심으로 면목동 네거리에서 면목배수펌프장을 지나 동남쪽으로 긴 타원형으로 중곡초등학교까지 이르는 지점입니다. 돛대에 해당되는 곳은 면목네거리이고 배의 후미 선실 쪽이 중곡초등학교입니다. 배가 갖추어야 할 기본설비로는 키, 돛대, 닻입니다. 풍수지리에서는 이들 셋 모두를 갖추면 대길(大吉)한 땅으로 보는데 그중 하나만 갖추어도 배가 갈 수 있으므로 길지(吉地)로 쳐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닻은 배의 후미 쪽에 있는데 이곳 지형은 돛대 부근에 닻을 갖추었고, 닻에 해당되는 곳이 면목배수펌프장입니다. 배의 사명은 강을 향해서 돌진하여 물 위에 떠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데 만일 배의 앞쪽이 산을 향해 있다면 배가 지녀야 하는 본질을 벗어나므로 흉지(凶地)로 칩니다. 그러나 이곳은 중랑천을 향해 힘차게 뻗어가고 있으므로 이 배의 앞날은 무궁한 발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주형은 물 위로 배가 움직이고 있는 형태이므로 절대로 우물을 파면 안된다는 속설을 갖고 있습니다. 땅속에 있는 물줄기를 잡아올리는 것이 우물을 판다는 것인데 곧 밑바닥을 깬다는 뜻이고, 이렇게 되면 침수해서 단번에 흉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인지 면목동의 행주형에 해당하는 곳에는 예로부터 우물이 없었습니다.

만족도평가